국내여행/경상남도

합천 해인사 (2017년 11월)

바위다섯 2017. 11. 5. 19:33

가을이 다 가기전에 가보고 싶던 곳, 합천 해인사를 다녀왔다.

영등포역에서 부산행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내려 코레일관광 전용버스로 환승하여 합천 해인사로 갔다.

 

해인사 입구에 도착하자,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부터 했다.
신사의 아침이란 식당에서 먹은 풍경정식.사찰음식인데 반찬이 맛깔스러웠다.

 

해인사 올라가는 입구

 

김영환 장군의 고려 팔만대장경 수호 업적비

 

길상탑

길상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 석탑양식을 갖춘 탑으로 2층의 기단을 지니고 있다.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보물 제128호.

 

가야산 해인사

해인사는 통도사,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의 하나이며, 당에서 수도한 순응,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다.

해인사의 이름은 '해인삼매'에 기초하였다고 전해진다. 해인사는 창건이래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었으며,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지정한 최초의 총림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고려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하고 있어 불법의 큰 보배를 현전하는 법보종찰로 유명하다.

1995년 유네스코는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2007년 대장경판을 비롯한 해인사의 모든 경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고사목

고사목은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순응,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왕이 이 은덕에 보답코자 법당과 승려등 많은 가람을 헌공하여 해인사를 창건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로 전해진다. 이 느티나무는 1,200여년의 세월을 지내고, 1945년 수령을 다해 고사했다.

 

해인총림.

 

국사단

 

소원나무

 

구광루

 

보경당

 

해인도

해인도는 의상대사(625~702)가 당나라 유학시절 화엄사상을 요약한 210자 7언 30구의 계송(부처의 공적이나 교리를 담은 노래 글귀)을 만자를 발전시킨 도안에 써넣은 것이다.

 

범종루

 

청화당

 

대적광전과 정중삼층석탑과 석등

 

석등

 

정중삼층석탑

 탑은 본래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였던 곳이었으나, 이 후에 사리,경전,불상 등을 모시고, 예경하는 곳으로 발전했다.

정중삼층석탑은 불상을 모신 탑이며, 9세기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이며 해인사 창건 당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석등과 석탑 사이의 바닥들은 멀리 부처님을 향해 이마를 땅에 대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하는 정례석이다.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화엄종 사찰의 중심법당이다. 신라 애증왕 3년(802)에 순응,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순조 17년(1817)에 불타버려 이듬해 중건한 것을 1971년에 지관스님이 다시 중수하였다.

 

대적광전내 불상

 

법보단

 

대비로전

해인사 대비로전에는 9세기에 조성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동형 쌍불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비로전 내부

 

독성각

 

학사대

학사대는 신라 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857~?)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며 시서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 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고 한다. 당시 거꾸로 꽂아 두었다고 전해지는 전나무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아래로 쳐져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인증서.

 

법보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다.

 

법보전

 

팔만대장경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 현종때의 초조 대장경판이 불타버려 다시 새긴 재조대장경판이다.

 

수다라전

광해군 14년(1622)에 중수하였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조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다.

 

어수정

 

응진전

 

명부전

 

대적광전 옆모습

 

대장경 세계 문화 축전.

 

대장경천년관

 

동아시아 불경 해석서의 집대성, 교장

대각국사 의천이 고려와 송,거란(요),일본 등지에서 4,700여권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간행한 장소(경,율,논장의 연구 해석서)이다.

선종7년(1090)에 <신편제종교장총록>이라는 3권의 목록집을 편찬하고, 이듬해부터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본격적으로 조성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숙종7년(1102)경에 완성하였다. 판각 공간은 흥왕사와 함께 금산사, 광교원 등과 같은 지방사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목판은 몽고 침략으로 소실되었지만 반각판본과 원각판본응 찍은 인경본이 현재 순천 송광사와 일본 나라시에 동대사 등지에 남아 있다.

 

대각국사 의천

고려 교장을 조성한 고덕대승.

문종의 아들로 성명이 왕후, 자가 의천, 시호가 대갹, 법계가 국사이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과 더불어 고려 불교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화엄종과 법상종의 대립을 화해시키고 교와 선의 대립을 조화시키기 위해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팔만대장경의 제작과정

교정,편집-벌목-치목-제지-판하본-인경-제본.

 

교정,편집

 

벌목

 

치목

 

제지

 

판하본

 

판각

 

인경

 

제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