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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 4 포르투갈 파티마 (2015년 3월)

바위다섯 2015. 3. 23. 22:35

살라망카를 둘러보고 성모 발현의 순례지 포루투갈의 파티마로 향했다.

 

파티마 기념품 가게

 

파티마에서 구입한 코르크 모자를 쓰고, 파티마 대성당 광장 입구에 있는 코르크 나무 옆에서  

 

파티마

1917년 5월13일 성모 마리아가 세명의 목동 앞에 나타난 곳으로, 바티칸 시국 다음으로 많이 찾는 세계적인 카톨릭 순례지이다. 

성모발현일인 5월13일이 되면 어마어마한 광장이 발디딜 틈이 없이 꽉찬다.

 

파티마의 기적

1917년 5월 13일, 파티마의 목동들 루이사와 프란치스쿠,프란치스쿠의 동생이자 루이사의 사촌인 히야친타는 현재 성모 마리아 발현 예배당 위치에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했다. 발현한 성모에게 누구시냐고 묻자, '나는 로사리오의 성모다.'라고 말하고, 성모는 기도를 많이하고, 매달 같은 날에 같은 곳으로 나오라고 했다.목동들은 이를 부모에게 얘기하고,  6월과 7월에 이를 행하였으나 8월에는 그럴 수 없었다. 정부 관리가 목동들을 감옥으로 데려가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약속한 날의 6일 후 다른 곳에서 발현을 목격했고 9월이 지나 10월에는 소문을 듣고 모여든 기자를 비롯한 약 7만명의 사람들 앞에서 발현하는 기적을 보였다. 일명 '태양의 춤'이라 불리는 이 기적은 움직이며 굴곡이지는 태양을 모든 사람들이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한다. 목동 중 프란치스쿠와 히야친타는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으로 죽고 루이사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녀로 살았다. 성모는 파티마의 비밀 3가지를 루이사를 통해 전하였다. 카톨릭 미사예식인 성체를 하고 죄인을 위해 기도하며 묵주기도를 계속하면 러시아는 회개하여 평화가 올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종교를 박해하고 교황은 고통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는 공산주의에서 벗어나고 요한 바오로 2세는 암살에서 살아 남았다. 다음 해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로 순례를 왔고 이를 기념해 광장에는 그의 조각이 남아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 동상

 

 성 삼위일체성당 입구

 

성 삼위일체 성당 내부

 

성 삼위일체 성당 앞에서 성 로사리오 성당을 배경으로 하고

 

순례자는 성 삼위일체 성당부터 무릎으로 기어서 성모 발현 예배당까지 간다.

 

성모 발현 예배당

광장에 마련된 소예배당은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던 곳에 지어졌다. 소예배당 안에 아주 작은 성전은 성모 마리아 발현 당시 로마 교황청이 공인하기 전, 현지인들이 세운 아주 작은 성전이고, 작은 성전 앞 성모 마리아 발현터에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광장 중앙, 물이 솟아난 자리에 1932년에 세운 예수 성심상이 있고, 왼편에 성모 마리아 발현 예배당이 있으며, 뒤편에 파티마 대성당(성 로사리오 성당)이 있다.

 

파티마 대성당(성 로사리오 성당)

교황의 공인 후, 1928년에 짓기 시작해 1953년에 완성되었다.

 

파티마 대성당 앞 광장

 

파티마 대성당은 2년 뒤 성모 발현 기념 100주년을 맞이하여 내부 공사중이라 관람이 제한 중이었다.

 

성모 발현 목격자 히야친타와 루이사의 묘

목격자 히야친타는 1919년, 프란치스쿠는 1920년에 당시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으로 선종했으나, 루이사는 2005년 97세로 선종했다.

 

성모 마리아 발현 목격자 프란치스쿠 묘

 

베를린 장벽

파티마에서 발현한 성모마리아의 세번째 메세지가 이루어져, 72년 뒤 공산주의의 몰락(베를린 장벽의 붕괴)을 기리기 위해 독일에 사는 포루투갈 이민자들에 의해 파티마로 보내졌다고 한다.

 

베를린 벽의 야경

 

파티마 광장 옆 숙소 Hotel Santa Maria 

 

성모 마리아발현 예배당에서는 매일 저녁 큰 규모의 햇불 행사가 이어진다.

 

세 목동과 대기자들이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기다리며 묵주기도를 올리며 기다리던  참나무.

 

파티마의 성모 기념품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