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바티칸

유럽여행 17 바티칸 (2013년 8월)

바위다섯 2013. 9. 15. 20:36

로마의 성 바울 성당을 보고 점심을 마친 후 바티칸으로 향했다.

 

바티칸

774년 프랑크왕국 피핀왕의 약속에 따라 카알대제가 로마공국령을 교황에게 증정함으로써 탄생하게 되었다. 소위 교황의 통치령은 길고 복잡한 역사를 통해 현재까지 이어온다.오늘날과 같은 소규모 독립국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은 ,1929년 당시의 무솔리니 정부와 비오11세의 소위 "라테란"조약에 의해서다. 이렇게 탄생한 바티칸시국은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독립국으로서면적 0.44km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이다.

바티칸은 역대 교황들의 거주지가 되었는데, 아비뇽 유배시대 이후 현재까지 65명의 교황이 이 곳에 머물렀다.바티칸은 성 피에트르 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을 빼놓고는 일반인의 입장을 금하고 있다.이곳에서는 아직도 스위스 근위대를 볼 수있다. 노랑,파랑,빨강을 적당히 가미한 줄무늬의 유니폼은 과거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카스텔산 탄젤로 성

 

 

바티칸 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런던의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대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3대 박물관 중 하나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교황 율리오2세, 레오10세,클레멘스7세 등이 벨베데레 궁전 정원에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예술작품을 모아 놓기 시작한 것이 바티칸 박물관의 시초이다. 박물관은 비오7세(1800년~1823년) 때의 유명한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에 의해서 현재와 같이 정비되었다.

 

피냐정원

 

 

 

 

 

 

 

 

 

아폴론

 

벨베데레 정원

 

라오콘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은 그리스인들의 목마를 성 안에 들이지 말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가 아테나여신의 노여움을 받아 두아들과 함께 죽는다. 라오콘은 자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두아들을 안타까워하는 표정과 뱀에게 옆구리를 물리며 뒤틀린 허리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얐다.

 

 

 

 

 

 

 

토르소

 

 

 

 

네로 황제의 욕조

 

 

 

 

 

 

 

 

 

아라치의 회랑

 

 

 

 

 

 

 

 

 

 

 

 

 

 

성 베드로의 해방

 

라파엘의 방에 있는 아테네 학당

아테네의 학당은 라파엘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유명 철학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것이다.

 

 

 

 

 

씨스틴 성당의 제단 벽에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촬영 금지로 복사본임

미켈란젤로가 씨스틴 성당의 천정화를 끝낸지 22년 후인 1534년, 59세의 미켈란젤로는 크레멘스 7세의 주문으로 다시 씨스틴 경당으로 돌아오게 된다. 230 평방미터에 달하는 제단벽을 그의 작품으로 채우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 후 바오로3세 때인 1541년까지 약 7년에 걸쳐 '최후의 심판'을 완성했는데, 인류 최후의 날의 혼돈을 묘사한 것이다.어떤이는 승천하고,어떤이는 죽음에서 부활하고,어떤이는 지옥으로 끌려가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 선고 직전의  긴장감이 감도는 오른편에는 성모 마리아, 그리고 왼편에는 열쇠를 든 베드로가 있고, 그 밑에는 살이 벗겨지며 순교를 당한 바톨로메오가 자신의 살가죽을 들고 있다. 그 늘어진 살가죽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었다. 벽화 오른편 하단의 당나귀 귀를 하고 몸에는 뱀을 감고 있는 인물은 지옥의 문지기 미노스이다. 이 미노스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나체가 많다고 작품을 혹평한  교황바오로3세의 의전관 체세나의 얼굴로 묘사되었다. 1564년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비오4세는 미켈란젤로의 제자 볼테라를 고용하여 그림속의 인물들에게 옷을 입히는 작업을 시켰다.

 

성스러운 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그의 25세때인 1499년에 만들어졌다.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들어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고 깊은 슬픔에 빠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 피에트로 성당의 돔

높이 136.5m의 돔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으나 그의 사 후 완성되었다.

 

 

 

 

성 베드로의 무덤

 

 

발다키노

1624년 교황 우르반8세의 지시에 따라 베르니니가 제작한 화료한 바로크 양식의 캐노피는 성 베드로의 무덤위에 서 있다.

 

 

 

 

 

성 피에트로 성당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가 정식으로 공인된 후, 바티칸 언덕위 성 베드로가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326년 당시 교황 실베스트로의 요청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바실리카를 기증하였다. 그 후 세월이 지나 성전이 낡게되자 1506년 대성당 건축이 결정되었다. 성전은 12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친 뒤인 1626년 우르바노2세에 의해 완공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성당의 정면은 바로크 양식으로 높이 46m,길이 115m로 카를로 마테르노가 1614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성당 중앙제단 못미쳐 오른쪽에 성베드로의 처동좌상은 13세기 아르놀포 디 깜비오의 작품으로 확인 되었다. 성당 중앙제단은 마르테노의 작품인데, 제단 밑에는 갈릴레아 바다의 어부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 제단을 덮고있는 천개는 베르니니의 작품으로 1633년에 완성되었다.

 

 

 

 

 

 

성 베드로 광장

이 광장은 바로크 건축의 대가 베르니니에 의해 실현되었다. 알렉산드로 7세의 주문에 의해 1667년에 완성된 대작이다. 폭이 240m의 타원형의 광장으로 좌우 양쪽으로 반구를 이루며,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도리아식 기둥 284개의 원주와 88개의 각주가 늘어서 있다.열주를 덮고있는 지붕 위로는 96명의 성인들이 늘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