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프랑스

유럽여행 9 프랑스 파리 (2013년 7월)

바위다섯 2013. 9. 9. 12:58

다음 행선지는 도버에서 다시 카페리호를 타고 프랑스 깔레로 넘어가서 파리로 갔다.

파리 Hilton Hotel Paris Orly Airport에서 2박했다.

 

프랑스

프랑스는 인구 약 6,300만명, 면적 54만7천km로 서부유럽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국외에도 많은 해외 통치령을 가지고 있으며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있다.

프랑스의 지형은 6각형으로 유럽 최고의 곡창 지대에 속하여 최고의 곡물 수출국 중 하나다. 산악지대에서는 목축업과 낙농업 제품들이 생산되며, 철,석탄등 지하자원도 풍부한 편이다. 모직,면직,자동차와 항공산업,군수산업,고속철도(TGV)와 첨단 우주산업,그리고 양조업과 향수 제조업,의류산업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관광산업 역시 주요 수입원이다.

 

파리

주변지역을 포함하여 인구1,200만(파리는 250만)의 대도시이다. 기원전 300년 경부터 세느강의 시테섬에서 어부생활을 하고 지내던 켈트족의 일파인 파시리아족의 거주지 루테치아에서 발전하였다.

오늘날과 같은 파리의 도시 계획이 이루어진것은 나폴레옹1세때 개선문을 건립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방사선형 도로를 만들면서이다. 나폴레옹 3세때 도로에 상,하수도를 설계 정리하여 청결한 도시를 이루었다.

 

파리 축구 경기장

 

저녁 식사를 한 사계절 한국식당

 

파리 에펠탑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의 설계에 따라 건축된 탑이다. 탑의 높이는 320.75m로 7년마다 한번씩 약 60톤의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원래 박람회 이후 철거 예정이었지만 무선통신을 위한 가치가 인정되어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TV 송신탑으로 이용되고 있다.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 파리시내

 

멀리 몽마르트 언덕이 보인다.

 

사이요 궁

사이요 언덕 위에 양쪽으로 날개처럼 벌려진 모습으로 , 1937년에 있었던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하여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현재 인류,해양, 그리고 문화재 박물관이 그 내부에 자리잡고 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세느강변의 야경

 

알렉산더3세 다리의 야경

알렉산더 3세 다리는 세느강의 목걸이라고 불리운다.  1894년에 체결된 프랑스와 러시아의 동맹을 기념하기위해 건축되었다. 이동맹의 주도적 역활을 한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더3세의 이름을 따라 불리운다. 1900년 만국박람회에 맞추어 완공되었다. 이 다리는 세느강 우측의 그랑팔레와 프티팔레를 세느강 좌측의 앵발리드 돔과 연결하고 있다.

 

오르세 미술관의 야경

 

노트르담 사원의 야경

 

베르사유 궁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이곳은 루이13세가 사냥을 하며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1624년에 건축한 작은 별장이었으나, 루이14세가 1661년부터 20년간의 공사기간 끝에 완전한 바로크식 건축물을 세웠고, 루이 16세가 혁명의 과정 속에서 튈르리 궁으로 이사한 1789년까지 3대에 걸쳐 약 100년간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건축의 총지휘는 루보와 망사르가 맡았고 정원은 르 노트르, 미술은 르노르룅이 맡았다. 이 궁전에서 1783년 미국의 독립승인과 조약이 맺어졌고, 1871년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굴욕적인 조약을 맺은 곳이며, 또한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된 곳이기도 하다.

 

거울의 방

궁전 내부에서 가장 밝고 화려한 모습을 하고있는 이 방은 1687년 망사르에 의하여 건축되었다.

이방에서 1871년 보불전쟁후 강화조약과 독일 제2제국 선포, 1919년 베르샤유 조약등이 성립되었다.

 

왕비의 침실

 

나폴레옹 1세의 황제 대관식

화가  다비드 본인의 복사본이다. 원본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콩코르드 광장과 오벨리스크탑

 단결과 화합을 뜻하는 콩코르드 광장은 건축가 가브리엘이 루이 15세에게 바치기 위해 20년에 걸쳐 만들었다.

혁명 당시에는 기요틴이 설치되어 루이16세와 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하여 많은 왕족과 귀족들이 처형을 당했다. 혁명 전개과정에서 많은 반대파 인물들, 특히 당통,로베스피엘등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오벨리스크탑

룩소의 오벨리스크탑은 기원전 13세기의 것인데,1831년 에집트의 부통령 모하멧 알리가 당시 루이 필립왕에게 선물한 것이다.

 

분수대

 

루브르 박물관

세계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파리를 방어하기위해 13세기에 축조된 요새였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관으로 약 40만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밀러의 비너스,모나리자,만종,이삭줍기,승리의 여신상,나폴레옹 대관식,메두사호의 뗏목,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아모르와 프쉬케등이 인기있는 작품이다.

 

함무라비 법전

 

밀로의 VENUS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상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나폴레옹 1세의 황제 대관식

 

그랑드 오달리스크

 

메두사호의 뗏목

 

노트르담 대성당

시떼섬의 Zero point앞에 있는 중세 고딕양식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1163년부터 시작되어 필립6세때인 1345년에 완공되었다.

성당 내부에는 직경 10m의 장미창이 있는데 파리의 보석이라 불린다. 그리고 중앙제단에서는 1804년 나폴레옹이 대관식을 거행하였으며, 성당 광장에는 샤르마뉴 대제의 청동 기마상이 있다.

 

노트르담 대사원 정문

 

노트르담 성당 내부

 

직경 10m의 화려한 장미창, 파리의 보석으로 불린다.

 

샤르마뉴 대제 청동 기마상

 

팡테옹

루이15세때 1758년에 착공해  1790년에 완성된 고딕양식과 그리스 건축물이 혼합된 네오클래식 형식의 건축물이다. 혁명에 공헌한 위인들의 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해서 미라보,볼테르,장자크 루소,빅토르 위고,에밀 졸라,장 물랭,앙드레 말로,알렉산드르 뒤마등 프랑스를 빛낸 작가,과학자,장군,정치가,등 80여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알렉산더3세 다리

 

드 골 동상

 

마들렌 사원

1764년 루이 15세때 교회 건축이 시작되었으나, 프랑스 대혁명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 후 1842년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그리스-로마 신전을 연상케하는 성전으로 완공되었다. 거대한 코린트 양식의 석주 52개가 받치고 있다.

 

오페라 가르니에(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 극장중 하나로 꼽힌다.1875년 개장되었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 되었다.

 

무랑루즈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성심성당

로마네스크-비잔틴 양식의 성심성당(싸크레 퀘르 성당)은 1870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 패전의 원인이 국민들의 부족한 신앙심 때문이라는 반성에서 건축되었다. 모든 프랑스 국민들의 성금(4천만 프랑)으로 1876년부터 40여여년 공사 끝에 완공되었으나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0년에야 축성되었다.

프랑스의 민족주의 성격이 강한 이 성당의 정면에는 프랑스의 영웅이자 동시에 카톨릭 성인으로 존경받는 생 루이9세와 잔 다르크의 기마상이 있다.

 

몽마르트 언덕(순교자의 언덕)

해발 약129m의 이언덕은 주위의 가난한 시민들이나 3류 계층의 시민들이 살던 빈민촌이 자리하고 있었다. 초기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펼치며 거주했다.

몽마르트라는 명칭은 6세기 경 쌩 드니가 포교활동을 하다가 순교를 당했기 때문에 불리운 이름으로 여겨지며 순교자의 언덕을 의미한다.

 

몽마르트언덕에 있는 테르트르 광장

무명화가들이 이곳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19세기말에는 특히 르누아르,고흐,로트 렉,피카소등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예술세계를 펼쳤다고 한다.

 

방돔광장에 있는 나폴레옹의 오스테를리츠 전투 승전탑

 나폴레온 승전탑은 전쟁에서 획득한 1,200개의 대포를 녹여 만든 것으로, 탑의 꼭대기에는 나폴레온 동상이 있다.

 

샹제리제 거리

개선문에서 콩코르드 광장까지 길이 약3km,너비 약 100m의 거리이다. 각종 쇼핑및 유행을 주도하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며 유명한 거리 중 하나이다.

 

개선문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러시아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한 1805년의 오스테를리츠 전투를 기념하기위해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을 본따서 개선문을 건립하기 시작 하였다.개선문은 나폴레옹의 사후 1836년에 완성 되었고, 1840년 그의 유해가 개선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1944년 여기서 드 골이 파리의 해방을 선언하였다.

높이 50m,넓이는 45m이며 나폴레옹의 승전 부조를 비롯,전쟁에서 공을 세운 600여명의 장군 이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