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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대사 3

바위다섯 2024. 6. 16. 00:04

7. 야요이 문화의 성립

조몬시대라고 하는 수천년간 지속된 일본 원시사회에 대변화를 초래한 것은 농경문화의 유입과 금속기의 사용이었다.

 

BC 3세기 경이 되면 서일본에서는 야요이식이라는 새로운 토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약 1,000도 전후의 고열에서 구워낸 이 토기는 소성도가 조몬 토기보다 훨씬 강도가 높고바탕은 적갈색 또는 황백색이 대부분이다. 전기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보이고 중기에는 띠를 두른 듯한 돌출 모양, 즐문목문 문양등 지방색이 강하고 후기에 오면 문양이 없이 전국적으로 동일 형태로 변해 가는 경향이 있다. 이 토기에는 종종 벼 낱알과 탄화미가 붙어 있어 이 토기를 사용한 사람들에 의해 벼농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벼농사를 최초로 시작했던 곳응 북큐슈였다.

 

벼농사 문화의 전래 코스에 대해서는 2개의 설이 있다. 하나는 중국의 양자강 하류역으로부터 직접 동지나해를 건너 남도를 따라 큐슈에 전해 졌다는 설과, 산동반도를 거쳐 한반도 남부에 수용된 후 다시 북ㅋ슈에 전해 졌다는 설이다.

북큐슈에는 마제석검, 지석묘,호형토기 등 북큐슈의 야요이 유물이 한반도 남부의 것과 공통되는 요소가 많응 점에서 후자의 설이 유력하다.

북큐슈에 전래된 벼농사 문화는 약 100여년 사이에 긴키지방에 까지 퍼지고, 기원 전후에는 동일본 그리고 2~3세기 경에는 간토지방에서 도호쿠 지방에까지 미처, 오키나와와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 전역에서 농경이 행해지게 되었다.

 

야요이 문화의 또 하나의 특색은 금속기의 제작과 사용이다. 금속기 중에서도 동검,동모,동과는 1~2세기 경에 중국 동북부, 한반도로부터 북큐슈에 유입되었다.

 

동기류와 함께 철기를 사용한 것이 이 시대의 특샛이었다. 철기는 무기의 발달을 촉진시켰을 뿐 아니라,각종 농기구나 수렵구에 이용되어 생산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삼국지' '위서' 변진조에 가야 지역의 철을 왜인들이 구입했다는 기록이 전하듯이, 한반도 남부로부터의 수입철을 원료로 철제품을 생산하였다.

 

8. 농경문화와 정치, 사회적 변화

농경의 발달은 사회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종전의 수렵과 채집, 어로에 의한 자연 경제로부터 생산 경제로 바뀌게 되었다.이로 인해 인간의 정주성이 강해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취락이 발달해 갔다.

한편, 수전 경작에 따라 농경과 관련한 종교적 의례가 나타났다. 일본의 국가적 종교의례로서 정착한 기년제나 신상제도 그 연원은 야요이 시대의 농경 의례에서 나왔다고 추측된다.

 

농경의 발달에 따라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잉여 농산물의 축적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 결과 취락간의 빈부의 차가 생기고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 점차 계급사회로 바뀌어 갔다. 중기 이후에는 치수와 관개를 위해 취락들 사이에서는 공동의 작업과 이해의 조정이 필요하게 되어 일정한 경지를 단위로 하는 지역을 통치하는 정치적 수장이 출현하게 되었다.

 

2023년 11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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