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조선왕릉

선정릉 (2015년 9월)

바위다섯 2015. 9. 25. 23:00

조선왕조의 릉을 찾아보기로 한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3종류로 나뉜다.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곳이 '왕릉'이고,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묻혀 있는 곳이 '원'이라고 하고, 대군,공주,옹주,후궁,귀인이 묻힌 곳을 '묘'라고 한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22기에 이르며, 이 중 능이 42기이고, 원이 14기며, 묘가 66기이다.

 

왕릉의 입지는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면서 자연의 지세를 존중하는 자연조화적 조영술을 따랐다. '경국대전'에 '능역은 한양성 사대문 밖 100리 안에 두어야 한다'라고 명시 하였는데, 도성에서 10리 내지 100리 이내가 입지의 첫째 기준이었다. 실제로 북한 지역에 있는 후릉,제릉과 경기도 영릉, 강원도 영월의 장릉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두는 서울 사대문으로부터 100리 안에 조성되었다.

 

조선 왕릉은, 제1대 태조의 건원릉, 신의왕후의 제릉, 신덕왕후의 정릉.

                   제2대 정종과 정안왕후의 후릉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헌릉

                   제4대 세종과 소헌왕후의 영릉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현릉

                   제6대 단종의 장릉과 정순왕후의 사릉

                   제7대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

                   제8대 예종과 안순왕후의 창릉, 장순왕후의 공릉

                   제9대 성종과 정현왕후의 선릉, 공혜왕후의 순릉

                   제10대 연산군과 거창군 부인의 연산군 묘

                   제11대 중종의 정릉과 단경왕후의 온릉, 장경왕후의 희릉, 문정왕후의 태릉

                   제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효릉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강릉

                   제14대 선조와 의인왕후,인목왕후의 목릉

                   제15대 광해군과 문성군 부인의 광해군 묘

                   제16대 인조와 인렬왕후의 장릉과 장렬왕후의 휘릉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영릉

                   제18대 헌종과 명성왕후의 숭릉

                   제19대 숙종과 인현왕후의 명릉, 인경왕후의 익릉

                   제20대 경종과 선의왕후의 의릉, 단의왕후의 혜릉

                   제21대 영조와 정순왕후의 원릉,  정성왕후의 홍릉

                   제22대 정조와 효의왕후의 건릉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

                   제24대 헌종과 효헌왕후의 경릉

                   제25대 철종과 철인왕후의 예릉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의 유릉

그리고 추존 왕인 덕종과 소혜왕후의 경릉, 원종과 인헌왕후의 장릉, 진종과 효순왕후의 영릉, 장조와 헌경왕후의 융릉, 익종(문조)과 신정왕후의 수릉 등이있다.

이 가운데, 북한지역에 있는 제릉과 후릉,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 묘 등 4기를 제외 한 40기가 2009년 6월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조선왕릉 구조도

 

선정릉

 선정릉는 사적 제199호이다.

 

선릉

 1495년에 세워진 조선 제9대 성종(1457~1494)과 1530년에 조성된 성종의 제2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다(동원이강릉). 정현왕후 윤씨는 성종의 세번째 부인이며 중종의 생모이다.  ' 동원이강'양식을 따르고 있다.

성종은 재위 중 경국대전을 반포하여 조선의 법전체제를 완성하고 조세제도로는 관수관급제를 실시하여 백성의 부담을 줄였다. 홍문관을 설치하고, 동국여지승람등 많은 서적을 편찬하였다. 국조오례의를 편찬하여 유교예법을 확립하고 창경궁을 창건하였다. 밖으로 윤필상등을 보내 압록강,두만강 건너의 야인을 물리쳐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는 후사없이 승하하여 파주 순릉에 모셔졌고, 연산군의 모후인 윤씨는 폐비가 되어 서삼릉의 회묘에, 계비 정현왕후는 이 곳 선릉의 동쪽 언덕에 모셔져 있다.

 

 

선릉 수복간

 

해설사에 의하면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홍봉한의 글씨라고한다.

 

 

선릉

 

성종대왕 선릉 동쪽으로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의 릉(선릉)이 있다.

 

정현왕후 윤씨의능. 

 

난간석주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의 릉

정현왕후 릉은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있으며 이 곳 석물들은 국조오례의에 의하여 장대하면서도 조화가 잘 이루어져 균형미가 있다.

정현왕후는 윤 호의 딸로 중종과 신숙공주를 낳았다.

 

정현왕후 릉의 문인석의 문인은 수염이 없다.

 

정릉

 1544년 세워진 조선 제 11대 중종(1488~1544)의 릉이다. 정릉은 단릉으로 홍살문과 정자각및 능침이 일직선상에 있다.

중종은 성종25년(1494)에 진성대군에 봉해졌다가, 1506년 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왕위에 올랐다.

중종은 재위 기간중 조광조등 새로운 학자를 등용하여 나라의 기틀을 확립하고자 현량과를 설치하고 향약을 실시하여 향촌 자치를 시도하였다. 그의 재위 중 서원이 설립되기 시작하였고 주자도감을 설치하여 활자를 개량하여 많은 책을 펴냈다. 삼포에서 왜인들이 난동을 부리자 이를 진압한 뒤 비변사를 설치하여 국방체제를 정비하였다.

인왕산 치마바위로 유명한 중종의 원비인 신수근의 딸 단경왕후는 양주시 온릉에, 윤여필의 딸인 제2계비 장경왕후는 고양시 서삼릉의 희릉에, 윤지임의 딸인 제2계비 문정왕후는 서울시 태릉에 모셔져 있다.

 원래 정릉은 고양 서삼릉 내의 희릉(장경왕후 능) 오른쪽 언덕에 있었으나 1562년(명종17) 문정왕후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선정릉은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고 파헤쳐져서 3기의 능은 모두 비어있다고 한다.

 

 

 

 

 

2013년 6월 선정릉 사진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릉

 

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