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2015년 9월)
서울에 살지만 옛날 동물원시절 가본 이후, 몇십년만에 창경궁을 찾았다.
창경궁
창경궁은 원래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한 수강궁이 있었던 곳에, 1483년(성종14)부터 당시 생존하였던 세왕후(세조,덕종,예종)의 거처를 위해 수강궁을 확장하여 별궁으로 지어 1484년에 완공되었다.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상량문은 김종직이 지었으며 다른 전각의 이름은 서거정이 지었다.
창건 당시의 전각은 임진왜란때 모두 소실되고,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고 나서도 몇차례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것은 임진왜란 후에 재건된 명정전과 명정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등 외전과 1834년(순조34)에 다시 지은 숭문당,함인정,환경전,경춘전,통명전,집복헌,영춘헌등 내전으로 나눌 수 있다. 순종 즉위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 일제는 궁궐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식물원을 설치하였고,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수천그루의 벚꽃을 심어 1924년부터 밤벚꽃놀이를 시작하였다. 1983년에 창경궁 복원 공사를 하여 창경궁으로 환원되었다.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으로, 보물 제384호이다.
영조가 균역법을 정할 때 홍화문 밖에서 시전 상인들을 모아 놓고 의견을 직접 들었다고 한다.
동궐도
선인문
창경궁 창건 당시 세워진 문으로,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가 1877년(고종 14)에 중건 되었다. 옛 이름은 서린문인데, 주로 관원들이 궐내각사로 출입하던 문이었다. 중종 반정(1506년)때 연산군이 이 문으로 쫒겨나갔으며, 장희빈의 시신도 이 문으로 나갔다고 한다.
십자각; 홍화문 좌우에 있는 십자각으로 궁궐의 망루 역할을 하였다.(사진 네이버에서 전재)
옥천교
홍화문을 들어서면 바로 금천이 흐르고 그위로 옥천교가 있다.
성종14(1483)년에 만들어진 옥천교는 창경궁에서 가장 오래된 건조물로서 두개의 홍예로 이루어 졌으며, 두 홍예사이로 귀면을 조각해 넣고, 다리 위에는 아름다운 돌난간을 설치한 뛰어난 석조 미술품이다. 보물 제 386호이다.
명정문
1616년(광해8)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보물 제 385호이다.
명정전
창경궁의 정전이며 1484년(성종15)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1616년(광해군8)에 중건한 건물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 되었다.
국보 제 226호로, 다른 궁궐의 정전처럼 남향하지 않고 동향하였다. 창건 당시 대비들을 위한 이궁으로 지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드므
문정전
왕이 일상적인 정사를 보던 편전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남향을 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8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문정전 앞뜰에서 영조38년,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였다.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8일만에 숨졌다.
문정전 앞뜰
관천대; 소간의를 설치하여 천문을 관측하던 곳으로 숙종14년(1688)에 조성했으며, 원래 창덕궁 금마문밖에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 때 이곳으로 옮겨왔다. 보물 제851호이다. (사진; 서울답사에서 옮김)
숭문당
광해군때 건립되었으며, 이 곳에서 학문을 숭상하던 영조가 태학생을 접견하고 주연을 베풀었다고 한다.
함인정
영조때 이곳에서 문무 과거 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던 곳이다.
건물 내부 사방에 도연명이 사계절을 소재로 하여 징시 네구절이 현판으로 걸려있다.
도연명의 시 현판
환경전
1484년(성종15) 창경궁 창건 때 건립되었으나, 여러 차례 소실 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833년(순조33)에 중건한 것이다. 중종이 대장금의 진료를 받았던 곳이며, 중종이 이 곳에서 승하하였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요절했을 때 빈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경춘전
주로 왕비와 세자빈이 머물렀던 공간이며, 성종의 어머니 소현왕후 한씨, 숙종 때 인현왕후 민씨, 순조 때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또한 정조와 헌종이 태여난 곳이기도하다.
순조 34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영춘헌과 집복헌
영춘헌은 정조가 재위하는 동안 기가하던 곳으며, 1800년 승하한 곳이다.
집복헌은 영조11년 사도세자가 태여났으며, 정조14년에는 순조가 태여난 곳이다.
통명전
창경궁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왕과 왕비가 거처하던 침전의 중심건물이다. 창덕궁의 대조전, 경복궁의 교태전과 같이 건물 지붕에 용마루가 없다. 선조 때 명종의비 인순왕후 심씨가 이 곳에서 승하하였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음산한 일화가 담겨 있는 곳이다. 보물 제 818홍며, 편액은 순조의 어필이다.
순조의 어필 현판
통명전 옆의 연못
자경전 터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이 있던 곳. 고종10년(1877)에 화재로 없어졌다. 1911년 일제는 이 곳에 박물관을 지었으며, 광복 후 장서각으로 쓰이다가 1992년 녹지가 되었다.
풍기대
1732년(영조8)에 만들어 졌으며, 보물 제 846호이다.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측정하는 깃발을 꽂기 위해 만들어진 기상 관측 기구이다.
춘당지
원래 국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 시범을 보였던 장소인 내농포가 있던 자리를 일제가 연못을 파서 춘당지로 불렀고, 순종에게 뱃놀이를 즐기도록 하였다고 한다.
동궐도에 내농포와 국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 시범을 보인 농경지가 그려져 있다.(사진;서울답사에서 퍼옴)
춘당지 근처에 있는 백송
춘당지 부근에 있는 백송 3그루.
식물원
춘당지위에 있는 원래 소춘당지
성종대왕 태실